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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잘치는 눈은 어떤 눈일까?

category 일상, 생각 2017. 2. 16. 17:49


당구는 고등학교 이후로 거의 안쳤는데 대학생때부터 다시 하게 됐다. 나는 술을 안마시니 당구라도 안치면 애들과 딱히 어울릴게 없었다. 4구 당구를 치는데 처음에 50놓고 칠려니까 애들이 죽일려고 하더라. 나 고등학교때부터 50맞는데.. 암튼 내기당구라 예민해진 애들의 성화에 어쩔수 없이 80부터 했는데, 이게 또 하다보니까 80은 되더라. 그렇게 하루이틀 실력이 일취월장 100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100이다.



사실 고등학교때부터 내 의사로 당구를 배운건 아니었다. 1학년때 짝꿍이 4구 당구에 빠져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노는 애들이 거의 없는 범생이 학교라 같이 칠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당구가 건전한 레포츠라는 인식으로 자리잡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당구는 좀 노는애들, 이른바 불량 청소년들이 주로 즐기는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영화 '폭력서클'의 한장면.


그렇다고 그 친구가 불량한 애는 아니었고 그냥 당구에 미친 것 뿐이었는데, 범생이 학교에서 같이 당구치러 갈사람이 없으니 짝꿍이었던 나를 끈질기게 졸랐더랬다. 같이 당구치러 가주는대신 걔가 항상 짜장면내지 김밥이나 아무튼 먹을걸 사줬다.



그때 나는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밥이 해결된다는 건 꿀같은 유혹이었다.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데려다가 열심히 가르쳐주고 당구비도 항상 전부 지가 냈다. 그 친구 집은 부자였다. 암튼 그만큼 당구에 되게 열정적이었는데 지금은 뭐하고 사나 모르겠다. 대학진학으로 뿔뿔이 흩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더라.



지금은 대학교때 친구와 한번씩 만나면 당구를 치게된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술을 안마시면 친구랑 만나서 딱히 당구말곤 할게 없다. 그 친구도 10년 전에 나랑 같이 100놓고 치던 친군데, 아직도 100이다. 고만고만한 실력끼리만 하니 실력이 안느나보다.


당구에 미치면 자려고 누워도 천정에 길이 보인다는데 나는 그정도는 아니고 그냥 오랫만에 친구랑 만나서 칠때만이라도 좀 잘치고 싶은 것뿐인데, 실력이 도통 제자리니..



다른건 떠나서 두께를 정말 못보겠다. 길은 어느정도 보이는데 두께는 어떻게 보는지를 모르겠다. 사람의 눈이란게 포커스 기능이 있어서 초점을 맞춘 곳 외에는 흐리게 보이는데, 내공을 보면 목적구가 안보이고 목적구를 보면 내 공이 안보이고... 당구 잘치는 사람들 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