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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이야기 - 입소 첫날

category 일상, 생각 2017. 3. 17. 21:58

훈련소 이야기 - 입소 첫날




입대하는 날. 이상하게 덤덤했다. 다른사람들은 입대할 때 아침일찍부터 가서 훈련소 앞 고기집에서 바깥세상에서의 마지막 고기도 구워먹고 여러가지 의례(?)를 치르고 들어간다던데 나는 점심무렵 아버지차타고 집에서 느긋하게 출발해서 딱 1시반에 도착해 바로 훈련소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서 개미떼같이 모여있는 빠박이들을 보니까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나더라. 그때 나는 머리를 안짜르고 갔다. 누군가가 훈련소 들어가면 알아서 짤라준다고 해서 그냥 갔는데 머리 안밀고 온 놈 나밖에 없더라. 그때 머리 길이가 어느정도였냐면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오는 배용준 머리만큼 길었다. 겨울연가 배용준 머리길이를 모르면 검색해 보시길.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암튼 안에서 이상한 휴게실 같은데 앞에서 가족들이랑 얘기하면서 잠시 대기하고 있으면 나중에 조교들이 와서 아주 친절하고 상냥하게 "훈련병들만 따라오십시오~"한다.

아버지랑 작별인사하고 따라가니까 조교들이 다들 저거 뭐지?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라. 빠박이들 사이에 머리 산발한 놈 하나가 따라오니까ㅋㅋ 내가 입소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다른 훈련병들도 다 쳐다보던데 완전 스타된 기분이였다. 물론 보는 사람들은 '뭐이런 병X'으로 본거지만...



그리고 한참 따라가다 강당같은데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 그렇게 친절하던 조교들이 쌍욕을 하기 시작한다. 요즘은 안하는지 모르겠다. 나 때만해도 그랬다. 한껏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다음에 소지품 검사를 한다고 미리 갖고오면 안되는 소지품들 다 자진납세하라고 한다. 담배, 라이타, 휴대폰 등등. 여기서 안내면 진짜 죽을 것같은 분위기라 거의다 갔다낸다. 나도 담배 꼬불쳐 갔다가 쫄아서 그냥 자진납세 했다. 그런데 결국 소지품검사는 안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얼차려를 준다. 나름대로 무슨 이유를 갔다 댔는데 기억은 안난다. 쪼그려뛰기, 팔벌려뛰기,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등등 한 15분정도 시키는데 한겨울 1월이었는데도 온몸이 땀범벅 되고 내가 몸을 움직이는 건지 몸이 나를 움직이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 pt체조 8번 환상의 온몸비틀기까지. 온몸비틀기는 누워서 다리 45도로 들고 좌우로 내렸다 올렸다 하는 건데 이게 진짜 죽음이다. 다리가 달달거리고 정신이 유체이탈할 거 같은데 이거 할 때 어머님 은혜 노래를 시키더라.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 쓰는 마음~"


거짓말 안하고 이노래 부르는 동안 떡대같은 장정들 거의 다 운다. 조폭하다 온 거 같이 생긴 험악한 깍두기 아저씨도 펑펑 울더라.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이제 진짜 군대에 왔구나. 집밥도 엄마도 친구들도 안녕이구나. 진짜 웬만큼 감수성이 소나무 껍데기같이 메마른 놈 아니면 이대목에서 안 울수가 없을거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른 다음에야 비로소 입소자 신고식 예행연습을 시작한다. 줄맞춰 서기부터 경례하는 방법, 애국가 제창 등등.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 애들이 신기하게도 줄도 척척 잘맞추고 경례도 각떨어지게 잘한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 원래 신고식 예행연습은 연병장에서 한다는데 한겨울이라 강당안에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예행연습을 하고 연병장에서 신고식을 하는데, 그렇게 세상무서워보이던 조교들마저 대대장 중대장들한테 꼼짝못하는 걸 보고 있으면 간부들이 그렇게 커보일 수 없다. 군대라는 조직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그 중에 내가 얼마나 한낱 미물에 불과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칼바람 부는 1월이었는데 추운줄도 모르겠더라.


강당에서 얼차려 효과인지 신고식은 의외로 순조롭게 끝났다. 사실 이때는 누가 조금 실수해도 크게 터치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신고식이 무사히 끝나면 이때부터 생활관(그때는 내무반 또는 내무실이라고 불렀다)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인 훈련소 생활이 시작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편에..